#마음 표현
사불진언, 언불진의
書不盡言 言不盡意
글은 말뜻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글로 써 표현하려 해도 직접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없으며
말로 뱉어 표현하려 해도 그 모든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내 마음도 그렇다
내가 전하고 싶은 의도와 마음, 의미가 그렇게나 많은데 어째선지
네 앞에 서면 입이 벌어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문자로
이런 마음을 너에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보면서 자라온 아버지의 모습 때문일까,
생각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으시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전하지도, 우리 형제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시다.
아버지 된 중압감에 어쩔 수 없는 것 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가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것에 의심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행동과 습관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후 고향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 집을 손수 짓고 염소를 기르고 옥수수 농사를 지으셨다.
몸은 불편 하지만 마음 편해서,
아버지가 보고자란
아버지의 아버지 ,
나의 할아버지가
살아온 방식대로
그런 곳에서 나와 형을 낳고 우리 형제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산골 생활을 청산하시고 도시로 나오시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버지가 된 날 그러니까 나의 형님이 태어난 2월의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아스팔트도 아닌 시멘트 포장도로를 접하기 위해서는 돌부리 가득한 산길을 40분 이상 차로 내려와야 했는데 길이 거칠어 일반적인 차로는 안되고 트럭이나 지프차를 탔어야 하는 산골에서 기록 적인 폭설이 내린 2월의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진통을 시작하자 집에서 유일하게 시내로 갈 수 있는 수단인 봉고 트럭의 조수석에 혼수로 해온 가장 두꺼운 솜이불을 먼저 넣고 어머니를 태운 채로 산길을 급히 내려와야 하셨는데 몇 해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두메산골의 유일한 탈출로가 막혀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 눈 내린 산길에서 어머니를 차에 태워둔 채로 맨손으로 눈을 치우고 차를 조금 옮기며 한참을 가다, 서다 를 한참 동안 반복한 끝에 8시간 만에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무사하게 형이 태어날 수 있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은 추위에 부르트고 돌부리에 찢어져 피가 흘렀지만 멈추지 않고 눈을 치운 덕에 형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도 티격태격 하며 지내시고 어머니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적 없는 아버지지만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ps. 나는 다행히 따듯한 5월의 봄에 태어난 이후 아버지는 우라 두 형제를 부양하기 위해 내가 두 돌이 되기 전 성남으로 이사를 해서 이런 고생은 한 번으로 끝났다.
(어떻게 했는지 본인도 모르겠지만
두 번은 못할 짓이라고 하신다..)